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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버지는 가정 형편도 안 되고,
대구 중학을 다녔는데 공부가 하기 싫었다.
1학년 8반, 석차는 68/68, 꼴찌를 했다.
부끄러운 성적표를 가지고 고향에 가는 어린 마음에도
그 성적표를 내밀 자신이 없었다.
당신이 교육을 받지 못한 한을 자식을 통하여 풀고자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하는 소작농을 하면서도 아들을
중학교에 보낼 생각을 한 아버지를 떠올리면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잉크로 기록된 성적표를 1/68로 고쳐 아버지께
보여드렸다.
아버지는 보통학교도 다니지 않았으므로, 내가 1등으로
대구로 유학한 아들이 집으로 왔으니 친지들이 몰려와
"찬석이는 공부를 잘 했더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명순(아버지)이는 자식 하나는 잘 뒀어. 1들을 했으면
책거리를 해야제." 했다.
당시 우리 집은 동네에서 가장 가난한 살림이었다.
그 돼지는 우리집 재산 목록 1호였다. 기가 막힌 일이
충격적인 그 사건 이후 나는 달라졌다. 항상 그 일이
그로부터 17년 후 나는 대학 교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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