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지식/근심푸는 바닷가

어쩌다 멍청해진 것 같은 어떤 사람의 재기를 위한 독백

臥龍 李秉喆불잉걸眞劍 2007. 10. 4. 06:31

프로는 아름답다
프로는 말 그대로 프로의식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프로’는 전문가를 뜻하고 ‘의식’이란 말은
‘깨어있는 상태에서 자기 자신이나 사물에 대해 인식하는 작용’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즉, 프로의식이란 ‘자기 자신을 전문가로 인식하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프로’는 어떤 사람이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그 분야에서 일을 특출하게 잘하는 사람’이라고 대답 한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프로의 의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실력만 갖추었다고 해서 프로라고 말하기에는 ‘프로’라는 단어의 의미가 매우 깊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일은 잘하지만 ‘프로’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싶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프로’의 의미가 어떤 일을 탁월하게 잘하는 사람이라 한다면, 일만 잘한다고 그 사람이 아름다워질까?
그건 절대 아니지 싶다?  일을 잘하는 것은 기본이고,
그 외에 다른 무언가가 있다는 거다. 그것이 무엇일까? 바로 ‘의식’에 관한 부분이리라 생각한다.
프로는  자신을 리더하며 아름다운 도전의식을 겸비한 사람이다. 그래서 프로의식을 가진 사람은 자세부터가 다르다.
자아도취에 빠져있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자신을 진정한 전문가로 인식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인지하는 그릇이 크다는 뜻일 것이다.
스스로를 프로로 비교해보려면 의외로 간단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단어를 적용시켜 보면 알 수 있다
프로인지 아마추어인지 알 수 있는데." 정말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보통 프로의식은 일반적인 상황이거나 당연히 그래야할 때에는 크게 드러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특별히 게으른 사람이 아닌 이상, 평범한 상황에서는 대부분 열심히 일을 해결하려 하는 성향을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이 적용될 만큼 힘든 상황에서는 그 차이가 극명하게 나타나게 된다.
그거 아는가?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보다는 ‘그렇기 때문에’를
자신의 주무기로 사용한다는 것!
물론 의식은 행동을 만드는 근원이다. 그런데도 행동은 탁월한 데에 반해 의식은
그에 걸맞지 않은 실력자들이 주위에 꽤 많지만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때로는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다.
언젠가부터 나도 무너진듯하다 현재의 불편한 상태에서 이 사회의 냉소로 인해
나 스스로 기가 죽어 지내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필요 없는 과거 속에서도 딱한가지 목표를 위해 집착했던때를 스스로 자찬하며
정신력으로 버티며 프로가 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다
난 이 지금의 나이에도 한가지 일을 시작하면
결과와 상관 없더라도 끝을 맛볼때까지 물고 늘어지는 정신력 하나는 확실하다고 믿는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 를 살펴보고 내 자신도 점검해보자
'1.어제 회식자리에서 술을 많이 먹어서'(그렇기 때문에 / 그럼에도 불구하고),
'2.몸이 별로 안 좋아서'(그렇기 때문에 / 그럼에도 불구하고),
3.'퇴근시간이 다가와서'(그렇기 때문에 / 그럼에도 불구하고),
4.저 사람이 내 성격에 안 맞아서'(그렇기 때문에 / 그럼에도 불구하고),
5.'이 일은 내 담당이 아니라서(그렇기 때문에 / 그럼에도 불구하고),
6.'시간이 없어서'(그렇기 때문에 / 그럼에도 불구하고),
7.'그 정도 해도 별 문제가 없어서(그렇기 때문에 / 그럼에도 불구하고),
8.'그렇게 하면 손해 볼 텐데(그렇기 때문에 / 그럼에도 불구하고),
9.'나는 직위가 높은 사람인데(그렇기 때문에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식을 넣어서 어떻게 행동 했는지를 살펴보면 된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가 확연히 느껴지질것이다?
그렇기 때문에’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차이…….
아마 인생행로 자체가 달라질 수도 있는 차이라고 생각한다.
일찍이 데일 카네기는 “자신과 자신이 처한 현재 상태에 대해 자기 연민에 빠지는 것은
에너지의 낭비일 뿐 아니라 최악의 습관이기도 하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렇기 때문에’를 입버릇처럼 달고 사는 이들을 겨냥한 말이지 싶다.
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보다 ‘그렇기 때문에’를 더 많이 쓰고 있다면
분명 프로와는 거리가 먼 사람일거다
설령 일을 탁월하게 잘한다 하더라도 그건 프로의 흉내를 내고 있을 뿐,
다른 사람들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뜻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생활화하고 있는 사람만이 진정한 프로의식을 소유한,
아름다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자.
프로는 아름다운 향기가 있다
진정한 프로의식을 소유한 사람들에게는 정말 아름다운 향기가 난다. 별다른 이유도 없는데
마냥 함께하고 싶어지고 그 사람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게 된다. 또, 프로는 프로를 알아보게 되어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스스로 프로의식을 가지고 자신을 가꿔나가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 의해서 성공의 길이 활짝 열릴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이것은 프로라고 인정해왔던 사람들이 100퍼센트 성공을 이루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 말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있다.
“프로가 성공한다.”
내가 주위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인정받고 싶다면 정말 아름다운 사람이 되라고 스스로 충고해주고 싶다.
즉, 진정한 프로가 되라는 뜻이다. 부디 ‘프로’라는 칭호를 얻지도 않았으면서
남들보다 앞서기를 바라지 않았으면 한다. 그것은 결코 성립될 수 없는 공식과 같다고 본다.
그러니 매순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을 떠올려보자.
그 단어를 적용시킬 기회가 오면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
그것은 스스로를 프로로 만들기 위한 찬스이며 프로의식을 키우기 위한 최고의 훈련이 될 테니까.
시인이자 사상가인 랠프 왈도 에머슨은 “영웅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용감한 것이 아니다.
단지 5분 동안만 더 용감할 뿐이다.”라고 했다. 그러니 꼭 기억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상황은 당신을 진정한 영웅으로 만들어 줄 수 있음을 말이다.
이 세상은 프로를 원하며. 자기 인생 역시 프로를 원하고 진정한 프로가 되어야 한다.
난 노력없는 지름길은 가본적 없었고 앞으로도 지킬 것이라고 다짐해본다
あなたは愛されるためうまれた人
미래를 위한 교훈을얻기위해 과거를 분석해보고 나를 프로로 만들자
나의 상황 1. 가정형편이 찢어지게 가난한 어려운 환경속에서 성장하면서 유년시절부터
성당에 다니면서 착실함과 스스로의 성실함과 노력을 통해 그때그때 속하던 조직에서
중상위권은 유지했고 인정을 받아왔다 고교때는 장학생이었고 최전방 군대생활도
자타가 인정하는 패기 넘치는 사나이로서의 시절이었으며 지금 12사단사령부 28출신후배들과의
모임 회장이다나름대로 20대때부터 좋은 인간관계와 능력발휘로 잘 살아왔다는 거다

난 자랑할만한 프로는 아니었을지라도 프로테크니시안 이었다고 자부한다 과거는 필요 없으나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미래를위한 사나이의 열정을 갖고

평범한 사람들의 인생에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었고
직장생활때 내가 아끼며 가르쳤던 , 나의 오른팔 왼팔 역할을 하던 부하직원은 지금
차장급이고 회사의 각팀에서 뚜렷한 존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현재도 나를 인정해준다

이 분야가 한국 정착 시기일때 발을 들여 놓았는데 전자공학출신인 나의 적성에 딱 맞았기에
일 자체를 프로로서 즐겼고 포스코 광양제철소 핵심라인 NO1 CRM라인의 TCM 설비 전담자로
협력회사 관계 직원들에게도 인정 받았으며
특수센서 및 일본 히타치 산업컴퓨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전문가가 되었고
영어는 못하지만 바디랭귀지와 기술자간의 전문용어로 독일 스웨덴등의 산업컴퓨터 기술자와
설비 인터페이스를 맞추어 가면서 열정적으로 일했다 Auto Shape Control 제어분야에서
한국의 3인자가 될수 있었던 것은 내노력과 일본히타치의 국제적인 기술자 미요씨 덕분 이었다
나와 동갑인데 88년에 같이 일을 하면서 나에게 기술을 전수해주었기 때문이다

이미 세월이 흘렀지만 한국에 올때마다 꼭 전화를 해준다
2005년 시스템 구축하러 중국에 있다면서 전화도 왔고 작년에는 포스코 포항과 광양에 시스템 구축
합리화 작업중이라고 연락이 왔길래 가서 만나 술마시며 회포도 풀었다 지금은 친구로 지낸다
난 실무와 시스템 설계를 다했고 회사 규정대로 시험을 쳐서 전부 초시에
패스하여 초고속 승진을 한 최연소 과장으로 3가지 신기록도 세웠다
내 전공 분야의 최고가 되기 위해 새벽에도 일본기술자 사무실등에 가서 노우하우가 담긴 자료를
복사하고 제자리에 두고 비밀자료로 공부하며 나를 위한 산업스파이로 노력했던 일에 미친놈이었다

내가 부산에 있어도 설비 트러블이 생기면 시도 때도 없이 비상출근을 해야 하므로
365일 나의 행선지를 회사상황실에 보고해두고 다녔던 최첨단분야 기술자로
산업컴퓨터 자동제어의 최첨단 분야의 직업을 가지고 있을때도 감성을 잊지 않기 위해
수개월만에 한번씩 사보에 원고를 투고해서 원고료로 부하직원들과 호프한잔씩 하며 팀웍을 다졌고
산악회를 조직해서 실질적인 산악대장을7년간 했으며
볼링회 축구회등의 동호회활동을 하면서 내기술력 향상과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했다
이 과거는 선택을 잘한 결단력과 비지니스적인 인간관계와 노력하던 성실성을
미래를 위해서 교훈으로 삼는다 그때의 열정을 기억하고 나의 잠재능력을 활용하자
ぼくは身を粉にしてる働いてきた人であった
나의 상황 2. 그러나 나는 사고를 당해 지체부자유 장애자가 된후 황당한 사건을 겪었고 인생이 깨어진듯한
절망감속에서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과거에 나의 열정을 찾아 다시 활활 타오를 것을 다짐하건만
쉽사리 되지 않는 것 같다
건강하던 과거에 얶매여서일까?  아니다 결혼문제로 한국에 온 일본여자와 경주도뀨호텔에서 만나서
그당시 나의 경제력과 신분차이 때문에 포기했었다 내 형편에 돈벌고 나서
천천히 결혼하려고 맘먹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했다는소식에 마음을 바꾼 얼마후 중매가 들어와서 선을 봤던 것이
인생에 있어서돌이킬 수 없는 오판을 한 것이다 여편네였던 인간이
내가 사고를 당해 입원해서 퇴원하기 2개월전에
내 전재산 빼돌리고 빚만 쳐남겨놓고 도망갔기 때문이다 내가 멍청하게 살았던 탓이다

이 과거의 실패한 결혼은 나의 가치관도 작용했다고 본다
왜냐하면 어릴때부터 어머니 고생하시는 것을 보고
나는 결혼하면 여자들 일에는 절대 간섭 안할 것이라는 생각은 가슴에 못이 박히듯 박혀 있었는데
나의 상대자는 첫째 성격이 좋을 것 둘째 맞벌이 할수 있을 것 셋째:가난한집 출신일 것

(그래야 활동적인 내가 안심하고 사회생활을 할 수 있고 가진 것 없는 우리집 형편에 적응하고
힘을 모아서 개척해 나갈 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을러 빠졌고 그 나이에 맞게 상식적으로 알고 있을 여러 방면의 지식도 깡통이었고
취미라고는 단지 만화보는 것 뿐인 단세포적인 인간이었던 것이다
나는 팝송을 많이 아는 편이지만 솔직히 그년은 고등학생도 아는
팝송제목 하나도 모르는 수준이었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화제거리도 없었다
그년이 멍청한것도 순진해서라고 착각했던거다
내가 바람 피운적 없고 술주정뱅이도 아니며 또 내 월급으로 살기에는 문제가 없었는데도
내 재산을 빼돌려 도망간후 빚만 쌓여 있었던 것은 결국 내가 멍청하게 살았음를 뒤늦게 알았다

나는 가진게 워낙 없었으므로 내가 노력해서 쟁취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에
오로지 회사일과 집밖에 몰랐다
오로지 최고의 기술자가 되기위해 과중한 잔업(월평균160시간이상)을 계속하면서
월급 통장등 모든 것을 맡기고 일체 간섭을 안했으며 내 월급이 얼마나 되는지도 몰랐다
난 현장체질이라서근무기간 11년중에서 설계 2년을 제외하고는 컴퓨터 룸과 현장에서
전부 시스템구축만 했는데 수시로 협력업체에서 입금해준 돈도 많이 있었다는 것을 난 몰랐던 거다
내가 1997년 3월13일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했고
1998년 1월18일 모든 심신이 정상적이었고 오직 좌측 다리가 불편한 후유증으로 퇴원 했는데
퇴원2개월 전에 이미 내전재산을 빼돌리고
내가 모르는 빚도 4천여만원 남겨놓고 도망갔으며 내가 만들지도 않았던 신용카드도
만들어 써먹었으며 내가 사고 당하기 전의 아파트 관리비등 각종 공과금이 몇 달씩 연체되어 있었다
결국 나는 유일하게 산업컴퓨터시스템을 생산하고
기술자를 파견하는 단일 업종으로서 한국 최고의 대기업에서 과장으로
퇴직할 수 밖에 없었다
찾으러 다녔지만 마주쳐도 3번씩이나 도망쳤고 친정집 인간들도 모른다고 잡아뗐다
난 2000년 일본야마나시켄 히가시 야시히로에 취업가면서
여권갱신시에 부산시청에서 확인한결과 친정집에 동거인으로 있었다
이것은 그년 친정집 인간들도 한통속이라는 결론이었다 내가 무슨 잘못이 있냐
있다면 사고로 뇌수술을 받았고 후유증으로 다리 병신된것 밖에 없다

이때 난 실수를 했다 찾아가서 죽여버리던지 해야할것을 난 솟아 오르는 분노와
흥분으로 앞뒤생각도 없이 이혼재판을 청구했고 일본에 가서 몇달있다가
동업하던 사업까지 엉망이 되어 광양 아파트와 부산에이사와서 살던
빌라도 날아가서 귀국했다 당시 돈이 없어서 나는 진실만 갖고 혼자 상대했더니
모든 자료가 있어도 처음부터 변호사를 앞세운
그 인간에게 패소했다 그 몹쓸 년이 저지른 증거자료들은 지금도 갖고 있다
내가 만든게 아니라 공공기관에서 발행된 사실증명자료들이다
그 당시에는 돈이 없었고 나에게 죄가 있었다면 모태신앙을 갖고 성장해서
최고의 기술자가 되기 위해 회사와 집  일에만 전념해서 건전하게 살았다 
휴일이면 내차에 아이들을 태우고 놀러 다니며 자타가 인정했던 성실한 노력파의 보통 남자였다
그래서 난 오로지 진실로만 상대하면 된다는 생각에 혼자 상대했다가
그 계집년의 변호사의 조작된 내용에 패소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논리다
그래서 난 한국사회의 법과 변호사 녀석들을 저주한다
내사랑하는 두 아들이 보고싶다
큰아이는 어릴때부터 머리가 좋아 일반 유치원은 수준이 안 맞다고
영재 학원으로 추천받았던 녀석이다 둘째도 나를 쏙 빼닮았고 영리했으며 나를 무척 따랐다
지금은 중학교3학년 1학년이 된 못 만난지 벌써 10년이 되었다 그리워 죽겠다

이 과거는 바쁜 가운데 집일에는 신경 썼지만 여자들일에는 절대 간섭 안한다는 사고방식때문에
너무 맡겨놓고 수수방 관한 탓이고 그년의 그런 수준에 맞게 리딩을 하지않았던 잘못이다

난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있다 아버지 어머니를 닮아서 아직 머리가 쓸만해서 인지
부산대학등에서 A~A+ 학점으로  졸업했는데 인간행동과 사회환경 등
인간생활주기를 수강하면서 많이 울었다
사회복지학측면에서 보면 인간의가장중요한시기가 40대의 불혹의 인생이라 한다
인간관계적으로 부모자식간의 중간위치에서 자식을 거느리고 사회적인 명예와 함께
자아를 완성하는 시기다
이러한 중요시기에 30대 후반부터 지금까지10년간 보편적인 인간생활
특히 남자로서 경험해야할 가족의 환경을 갖지 못한 것이다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야 경험할 수 있는
잃어버린 세월이 되어버렸고 수시로 분노가 되어 치밀어 오르기 때문에
그인간을 망각하고 살지만   아들들이 관련되어 완전삭제가 잘안된다
 다만 그럴 가치 마져 없는 인간이라 내가 참고 만다
내가슴은 붉은피를 흘리는 상처로 피비린내 나는 강물이 흐르고 있다

그렇다고 나 이병철은 죽을수 없다 지금 내곁에 안계시지만
위대하신 내 어머니의 자랑스런 아들이 되어야한다
그래서 친구들 만나기가 부끄럽기도 하지만 비참해서 내 성격도 많이 변했다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는 내가 사고로 중환자실에 식물인간으로 있을때
의사도 속수무책이었는데 지혜로운 민간요법으로 열을 내리게 해서 의사가 본격적으로 수술을 했고
예정수술시간을 1시간30 여분이 지났는데도 난 견뎌내었고 살아났다 의식회복후에 의사가 하는말이
성모마리아님 목걸이를 하고 있었고 야윈 듯 했으나 단단한 근육체질이라 잠재의식속의 정신력과
체력을 감안하고 긴 수술시간을 진행했는데 보통사람 같으면 수술이 문제가 아니라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아서 수술중 사망한다고 했다

어머니는 나에게 2번의 인생을 주셨다 나고야에서 부자이셨던 내 외할아버지의
둘째딸로 태어나신 나의 어머니는 한국에 와서 고무신이 뭔지 알았는데 거의 천재이셨다
가족들 생년월일 통장번호 고조부님 증조부모님 기일등 줄줄 외우셨고 마산에 살고있는
이모는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여사를 모셨던 분이다 내 어머니처럼 생각하고 가끔 찾아 뵙는다
가난 때문에 평생을 고생만하셨고
이러한 나의 인생 역정속에서 나로부터 아무런 행복감을 가져보시지도 못한체 보람도 없이
영리하고 착실한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글을 남기셨는데 70세의 짧은 인생을 사시고 천당에 가셨다
어머니 고향 일본 나고야에 같이 여행가기로 한 약속도 못 지켜서

내 평생의 한으로 남았다 내가광양에 살 때도 월수입이 5백만원 가량 되었어도
전혀 도와드리지 못했다 어머니께선 오로지 내가 잘되기만바라시면서 전혀 내색을 안하셨는데
내가 눈치채지 못했고 아니 전혀 신경 안쓴것이다
어머니의 아들로서 내가 완전히 잘못한거다 왜그렇게 살았을까

어머니께선 내가 잘되기를 바라며은혜를 베풀기만하셨고
평소에 지혜와 슬기운 모습으로 당당함을 보이셨는데
객지생활을하면서 내사는것에만 급급한 나머지 까맣게 잊고 소홀히한 나의 잘못이다
오직 어머니께 대한 과거의 기억과 사랑은 가슴에서 불타고 있다
이 과거는 이제와서 후회해도 소용없으나 내가 어머니 바라시던대로 잘살아야며 속죄해야한다
나 이병철은 지금 무너진 듯한 불혹의 인생을 살고 있고 현재는 황당하지만 단기적 중기적
장기적으로 달성할 날짜를 정해서 붓글씨로 적어 항상 왼쪽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9개의 꿈이 있다
내가 죽기전까지 몇 개나 달성할지 알 수 없으나 꿈을 위해 산다 어떻게 해서라도 현실화시킬것이다

나는  123억원대의 착한부자가 될 것이다 “성실하고 아름답게 살자”를 다짐하며 용기를 가져본다
나 이병철은 내 어머니 일본 이름의 성당을 건립하고 또 어머니이름의 장학재단을 만들어
어머니처럼 키작고 성실한 여학생에게 장학금을 지원할 것이며 아담한 장애인 타운을 건설하고
운영하겠다는 꿈이 있다 반드시 현실화 시킨다
이과거의 교훈 불효자는 소중한 것을 뒤로 미루다 일을 당한 사람이다.

부모님은 언제까지 살아계실 거란 잘못된 믿음을 갖고 있던 사람이다. 그래서 늘 부모 관련 일은
우선순위에서 밀렸던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상갓집에서 가장 많이 운다.
우는 정성의 1/10만 살아 계실 때 투자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2007년 10월 03일
오늘로써 1031일째된다 전부 내탓이다 내가 그꼴이다 나는 나를 망쳐 놓은 그 인간 때문에
인생실패라는 숱한 갈등과 방황을 해왔다 그러나 어머니를 내가슴에 곱게모시고
아직도 더많이 남은 내인생을 다시 수려하게 꽃피우기위해 미래지향적으로
합리화시키는 핑계나 불평대신 불평거리를 없애는 데 시간을 투자해서 아름다운 부자로 거듭날 것이다
프로는 아름답다 何かを成功させるには過去の失敗を
嚴しく分析し未來への敎訓としなければならない
無理という壁を越えなければ强くならない 自分のにして仕事對プロである
자신은 인생의 바다를 항해하는 것이다
내 인생의 큰 바다에서 멸치만 잡을 수있나 확실한 배를 찾아서 타고 고래 잡으러 가자
안일하게 멸치만 잡고 만족하면 평생 고래를 구경도 못한다
큰 것을 잡으려면 큰배를 타야하며 큰배만 있어도 아니된다
고래를 만나기 전에 평소에 내 자신의 갈망하는꿈을 잊지말고 죽음을 각오한 병사처럼
삶과의 싸움에 임하며 큰배를 움직이게 하는 수많은 협력자를 만들어 두어야 한다

대망을 가졌다면 이루어야할 가족과의 생활과 돈버는 법도 배우고
내 자신의 주변 생활에 활력이 되는 협력자를 잘 두어야한다 나 이병철은 할수 있다
가사마키 가쓰토시 의 프로십훈 /나 이병철 확실히 하자
1.프로란 일에 생명을 거는 사람이다 2.프로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사람이다
3.프로란 자신의 일에 긍지를 지닌 사람이다 4.프로란 미래를 읽고 일을 하는 사람이다
5.프로란 시간보다 목표를 중심으로 매진하는 사람이다 6.프로란 성과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7.프로란 보수가 성과에 의해 결정되는 사람이다 8.프로란 달콤한 것이 없는 사람이다
9.프로란 능력향상을 위해 항상 노력하는 사람이다 10.프로란 일을 찾아서 해결하는 사람이다
내 인생을 개척하기위해 행동하며 살아야 한다 아직 더많이 남은 내인생에 건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