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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臥龍 李秉喆불잉걸眞劍 2017. 11. 28. 22:04

지도이미지

전라도 사투리를 빼닮은 정겹고도 구수한 도시, 순천

분명 안개 속에 쌓여 있었으나, 「무진기행」 속의 단절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안개와 몸을 섞은 갈대밭은

 삶을 성찰하게 했고, 읍성은 조선과 현재를 하나로 엮었으며, 사찰은 속세와 선계 사이에 놓여 단아한

아름다움을 선보였다. 순천은 그렇게 너와 나, 우리를 정겹고도 구수하게 연결시키고 있었다.

갈대밭, 안개,  순천만의 갈대밭, 그 진미를 즐기려면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길을 나선다. 늦가을 서늘함이 섞인 새벽 공기가 발걸음을 사붓사붓하게 만든다. 그러다가 서서히 다리가 느려진다. 아스라이 다가드는

11월의 은빛 갈대꽃 무리 사이사이에, 그 빛깔을 꼭 빼닮은 은은한 안개가 차분하게 맺혀 있다.

 

손으로 잡을 수 없으면서도 그것은 뚜렷이 존재했고 사람들을 둘러쌌고 먼 곳에 있는 것으로부터 사람들을 떼어놓았다. 안개, 무진의 안개, 무진의 아침에 사람들이 만나는 안개, 사람들로 하여금 해를, 바람을 간절히

부르게 하는 무진의 안개, 그것이 무진의 명산물이 아닐 수 있을까! - 김승옥 단편소설 「무진기행」 중 -

이맘때 절정을 맞이하는 순천만 무진길의 아침을 망막에 담으며 유럽풍의 낭트정원에 다다르면, 그 맞은편에 정겨운 초가집 무리가 눈에 들어온다. 김승옥의 숨결이 담겨 있는 순천문학관이다. 「무진기행」은 산업화의 정점에서 높은 사회적 지위를 얻은 주인공의 귀향 이야기를 다룬 1970년대 단편소설로, 김승옥의 대표작이다.

 

서울로 표상되는 일상의 공간과 무진이라는 탈일상의 공간이 주인공을 가운데에 놓고 줄다리기하는 가운데, 김승옥은 둘을 나누는 단절의 매개로 안개를 택한다. 그래서인지 순천만 습지를 잠식한 안개에 둘러싸여 갈대밭 사잇길을 걷고 있자니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 같은 고독이 온몸 지그시 가라앉힌다. 그러나 이 고독은 외로움과 다르다. 갈대밭과 안개를 사다리 삼아, 세상사에 지친 마음의 내면을 깊숙이 들여다보게 만드는 성찰의 감정이다. .’ 무진, 아니, 순천만의 안개 낀 갈대밭을 바라보며 무심결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조계산 선암사 / 순천만 습지

조선 시대 그 모습 그대로, 낙안읍성

‘땅은 넓고 백성은 많이 살며 한 지방이 평평하게 뻗어 있어 남방의 형승지로는 이곳이 제일이다.’ 조선 초기 문신 이석형이 남긴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 사실 낙안읍성을 닮은 성들이 몇 군데 있긴 하다.해미읍성이

 

낙안읍성에 필적할 만하다. 그러나 해미읍성과 달리, 낙안읍성은 98세대 228명이 옛 모습 그대로의 초가집에 거주하며 살아가는 ‘살아 숨 쉬는 옛 성’이다. 낙안읍성 주민들의 일상을 가만히 살펴보고 있자면,

 

조선 시대 백성들의 생활상이 한결 쉽게 눈앞에 그려진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한민족의 정서,

그 어딘가에 낙안읍성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조계산의 야트막한 산자락을 빌려 들어선 낙안읍성은 조선 태조 6년(1397), 김빈길 장군이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조했다. 당시에는 흙으로 쌓은 토성이었다. 낙안읍성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시기는

 인조 4년에서 6년(1626~1628), 조선 중기 명장 임경업 장군이 군수로 부임했을 때다. 2년의 세월이지만

 

 대부분이 축조 준비 기간이었고, 실제로 석성으로 고쳐 쌓은 기간은 한 달 남짓. 철저한 사전 기획이 투영돼 있음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이토록 공들여 쌓은 덕분일까. 오늘날의 낙안읍성은 조선시대 읍성 가운데

가장 완벽하게 보존된 읍성 중 하나로 평가 받고 있으며, 한양의 입지 조건과 가장 닮아 있는

 대표적 지방계획도시로 이름 높다.
낙안읍성에 들어서면 조선 시대로 회귀한 듯한 착각에 빠지기 십상이다. 주민들은 소를 몰고 다니고,

돌담을 고쳐 쌓으며, 텃밭에 핀 나물을 뜯는다. 서울 사람들과 달리 행동거지가 유유자적하기 그지없다.

 

그 고즈넉한 모습을 원경으로 감상하고 싶다면 성곽에 오르기를 권한다. 총 길이 1.4킬로미터, 높이 3미터에 달하는 성곽 길을 천천히 걷다 보면 수백 채 초가지붕과 성 밖의 드넓은 농경지,

주민들의 소박한 생활상이 하나로 더해져 목가적인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절로 마음이 편안해지는 풍경이다.

<출처 : 월간 KEP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