ぼくの春夏秋冬/ぼくの春夏秋冬

중년기 인생을 홀로 사는 명절과 나의 어린시절 명절

臥龍 李秉喆불잉걸眞劍 2011. 1. 31. 06:13

 나는 어릴적에   연날리기를 무척 좋아했다 대나무를 깎아서 살을 만들어 가오리연이나 방패연을 만들어

방줄을 매고 아미동으로 넘어가는  까치고개에 올라가서 연을 날리면 빙글 빙글 돌아서 멀리날리지 못할때는

자세로 감아서 소위 방줄길이를 잘조정해서  다시 매고 실을 풀면 까마득히 올라간다 

저쪽에서 연이 올라오면 두어번 감고튕겨주면 방패연은 뱅글 돌아 거꾸로 되었을때

 

계속 튕구어 수직으로 내리고 자세를 거꾸로 빨리 감아서 풀면

까딱까딱하면서 떨어지게 해서 올라온 연에 실을 걸어 연싸움을 자주했다  

중년기 386 세대들은 기억하겠지만 연싸움을 걸기위해 실에 유리조각등을 뭍인다.

 

우리동네에선 실에 "사"를 먹인다고했는데 (두둑사? 거칠게 깬 유리조각을 풀을 끓여 섞어서 실을 감아서 붙인것

유리조각은 화장품병이  제일 좋았다  뺑끼사(페인트를 더덕 더덕 실에 뭍혀 만든 두둑사의 일종이다

(상대방 연을 걸어서 잡아채면서 튕겨버리면 상대방실이 끊어진다 그리고 몰래 싸움을 걸기위해서는

 방패연을 투명한 비닐로 만드는데  연싸움을 걸기위해 상대방 연에 접근을 해도 상대방은 잘모른다) 

 

나는  비닐로 만든  해적연으로 우리동네에서 악명이 높았다 미끌사 와 두둑사 연과 싸움을 할때는

바람이 강하게불수록 미끌사가 우승확률이 높았던것으로 기억된다

 미끌사(계란을 푼 그릇속으로  실을 통과시켜 감아서 붙인것) 이것은  바람이 강하게 불때 유리한데

연싸움을 걸었을때 계속 풀어주는 데 자세에 감은 실이 많아야 한다

미끌사로 이기려면  연은 긴꼬리의 가오리연이 바람을 많이 받아서 유리하다  

 

나는 설날이 아니더라도 연을 자주 날렸고 물동이 밑의 테를 뺀 굴렁쇠 굴리기도

우리 클때 재밌는 놀이였던것으로 기억되며  겨울엔 소나무를 깎고 굵은 철사를 박아 만드는 썰매,

(이때 굵은 철사보다는 문의 레일을 잘라서 박아만든 썰매가 잘나갔다)

이렇게  직접 만든 썰매로 폭넓은 도랑이나 하천에서 썰매를 타던 감회가 새롭다

 

 아 예날이여   여기서 우스운 연날리기 중개방송 우스개 멘트 한마디하고 싶다

아아 여기는 2011년 설날 국제 연날리기 대회장입니다 앗 말슴 드리는 순간하늘에는  

프랑스의 씨앙년 일본의 니기미년 중국의 쑨호랑년   러시아의 개쓰키년  한국의 이년 저년 할것없이 

온갖 잡년들이 선두 다툼을 하고 있습니다  아그런데  저년은 왜 까딱까닥 하면서 멀리 떨어집니까

아 네 그년은  앞쪽의 이년과 싸움이 붙었는데   끊긴겁니다 

 바람이 강하니까 미끌사를 먹인 이년을 날리는 선수는 아주 빠르게 실을 풀어줄수있으니까 엄청 유리하죠


.

 

 

 

 

 

 

 

 

 

 

 

 

 

 

 

 

 

 

 

 

 

 

 

 

 

 

 

 

 

 

 

 

 

 

 

 

 

 

 

 

 

 

 

 

 

 

 

 

 

 

 

 

 

 

 

 

 

 

 

 

 

 

 

 

 

 

 

 

 

 

 

386세대들의 어린시절은  작은 별사탕이 들은  건빵과  크림빵  사탕  라면굵기의 3분의1 정도로

가느다랗게  밀가루 가락을  튀겨 만든 과자  뽀빠이 라면땅 자야 라는 과자가 최고였다  

초등학교 다닐때 는 지금의 버스 정류소 7군데 정도는 당연히 걸어서 학교에 다녔고

군것질 하기 위해서   엄마 50원만 도 풀빵 사먹게 엄마 10원만도  호떡 사먹을거란 말이야

그리고 밀가루반죽을 해서 손 바닥 반정도의 크기로 튀긴

 소위 김일성 과자가 그렇게 고소하고 맛 있었다 386세대들에게는  100원이 큰돈이었고

천원은 완전한 거금이었다 요즘은 만원도 돈이 아닌 세월이 되어버렸고... 

지금은 무상급식 어쩌구하는데 우리때는 학교점심시간에 옥수수빵 한토막과

우유인지 물인지 구분안되는 우유한잔을 배급 받아 먹었고  학교에서 돌아오면 엄마 빨리 밥도 

배고프단 말이야 엉엉 울면서   집문에 돌을 던지기도 했다 오! 나의 어머니 보고 싶습니다   

 일요일에는 산에 올라가서 칡덩쿨을 패서 씹어 먹었고 

필기라는 풀을 뜯어먹고 메뚜기를 잡아구워 먹었으며

여름에는 감천 바닷가에서 담치를 따고  다대포에 있던

어린이 해수욕장 옆의 성창합판 원목을 띄워 둔곳에가서

해삼을 잡고 남부민동 방파제에서는  게를 잡아 구워 먹었다 

동네에 돌아오면  무우밭 콩밭에 몰래 서리를 하다가  밭주인에게 안잡히려고

도망 다녔던 어린시절 또한 괴정동에서 아미성당에 다녔는데

성당에서올때에는  공동묘지가 위에 있어서 무서운  캄캄한 산길을

달빛을 받으며 뛰어서 집에왔다 

나는 고 지학수 다니엘 주교님께 유아세례를 받았고 영성체는

 아미성당의 고야고보 독일 신부님께 받았으며 그때의 내모습이 떠오른다 

 

 중학교 시절에는 독서광이었는데 토스토에프스키 괴테  톨스토이의 책들을 많이 읽었다 

고등학교때는 점심시간에  담을 넘어가  오동나무 숲에서 담배 피우던 기억과 

고교 3학년때 쌀막걸리가 처음 나왔을때 전병환 오판수 박창건

 손효근이와  지금의 문현성당 뒤쪽에 살던 김영환이 집에가서 

 막걸리를 사와서 사발로 떠서 퍼마셨고 막걸리에 취했는데

버스타고 겨우 집에 왔던 기억과 사복입고 여학생과

데이트하다가 교외지도반 선생님에게 들켜서

사복을 몽땅 압수당했지만  자격증을 3개 전부 취득한 탓에

 장학생이었고 훈방조치를 받았던 개인적인 기억들과

 리어카에 모레를 실어 나르며 뿌리던 학교 운동장 고르기 작업 매점에서 고르개를 사먹던 추억,

머리를 기르자고 3학년 전체 데모했다가 김재수체육 선생님의  단체기합, 책상다리로 엉덩이를 맞았던 기억 

 이제는 중년기의 삶을 살고있는 지금 아련한

추억의 파란종이가 만장이고 

 오늘은 하늘나라에 계신  내 어머니 생각에 눈물이 난다 

엄마 밥주이소 엄마가 잘만드시던 일본식의 여러가지

 오뎅요리국과  잡채  시금치 무침 된장찌개가 먹고 싶어요

 엄마  나의 엄마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