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지식/지식과 시사만평

부산보수동 책방골목

臥龍 李秉喆불잉걸眞劍 2014. 11. 11. 23:17

그윽한 책 향기 맡으며 거니는 문화 나들이

 

어린이도서관 개관 · 보수동책방골목 문화행사 …

시민 문화공간 재탄생

 

 

보수(寶水)는 보석 같은 물이다. 보석처럼 맑고 깨끗한 물이 흐르는 곳이 보수동이다.

맑고 깨끗했기에 부산 첫 상수도는 1880년 보수동 하천 보수천에 놓였다. 보수천 상류에서 광복로에 이르는 대나무 통이 부산 역사에 처음 나타나는 상수도다. 지금은 복개돼

 금모래 은모래 반짝이던 물길은 전설이 됐지만 그

흔적은 보수동이란 지명에 스며들어 우리들 기억에서 여전히 반짝인다.

보수동은 여전히 반짝인다, 여전히 보석 같다. 그때 그 시절은 물이 보수동을 반짝였다면 지금은 책이 보수동을 반짝인다. 그리하여 보수는 보서(寶書)다. 골목 양쪽에 책방이

자그마치 42군데나 늘어선 보수동책방골목. 책방 하나하나가 보석이고 책방에 들어선

책 하나하나가 보석이다. 책방골목 입구 홍보 문구는 메모해 둘 만하다. '사람이

만든 책보다 책이 만든 사람이 더 많다.' 보수동책방골목은 그만큼 보석 같은 곳이다.

 

1950년 형성 … 1970년 서점 70여개 들어서

보수동책방골목은 웅숭깊다. 책의 향기 서향(書香)이 웅숭깊고 서향을 풍기는 사람들

 표정이 웅숭깊다. 골목을 따라 골바람 불 듯 골목을 따라 사시사철 서향이 부는 곳.

사시사철 서향을 풍기는 사람들. 부산이 소비도시란 핀잔은 책방골목에 이르러

쏙 들어가고 부산 문화가 별것 있냔 눈총은 책방골목에 이르러 맥을 못 춘다.

하천 물결이 반짝이듯 책의 물결이 반짝이는 보수동책방골목을 나들이 삼아 거닐다 보면 누구라도 서향을 풍기고 누구라도 반짝인다. 처음도 책이고 끝도 책인 책방골목을

거닐다 보면 누구라도 책의 무게로 묵직해진다.

보수동과 책방골목은 한 묶음이다. 붙여서 쓴다. 부산 문화를 상징하는

고유명사가 된 것이다. 보수동 하면 떠오르는 책방골목, 책방골목 하면 떠오르는

보수동. 둘은 운명공동체가 된 지 오래다. 여기 책방골목은 언제 생겼을까?

보수동책방골목 문화관 입구 안내판 문구를 보자. '1950년 6 · 25전쟁이 발발하면서

부산이 임시수도가 됐을 때 함경북도에서 피란 온 한 부부가 최초로 헌 잡지 등을 팔면서 자연스레 만들어졌다. 보문서점(현 글방쉼터)을 시작으로

 1970년대에는 70여 점포가 들어서 있었다.'

그러니까 보수동책방골목 역사는 환갑을 훌쩍 넘는다. 고색창연한 서점이 그래서 많다. 묵은 책에서 나는 서향에 중독돼 주인은 주인대로 손님은 손님대로 묵은 책에 붙들린다. 아버지 하던 책방을 자식이 이어받고

 중 · 고교 다닐 때 단골이 된 사람이 나이 들어서도 단골이 된다.

어떤 사람에겐 익숙한 풍경이 다른 어떤 사람에겐 낯선 동경이다.

보수동책방골목은 환갑이 넘었음에도 낯선 동경이 돼 찾는 사람을 설레게 한다.

찾는 사람을 젊어지게 한다.

 

 보수동책방골목에서 헌책을 보고있는 관광객 모습.

 

남녀노소 아우르는 국내 유일 헌책방골목

보수동책방골목은 젊다. 나이가 들수록 젊어 보이고 실제로 젊다. 군살 찌지 않도록

 나잇살 들지 않도록 몸을 부단히 움직이고 마음을 부단히 움직인 덕분이다.

대기업 대형서점에 밀리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며 젊은 사람에게서

 외면 받지 않도록 끊임없이 자신을 가꾸어 나간다.

책방골목이 흘린 몸과 마음의 땀에 비례해 책방골목은 날씬해지고 산뜻해지고 있다.

보수동책방골목 문화관은 책방골목이 흘린 땀의 결실이다. 2010년 12월 골목 도로변

 모서리에 들어선 8층 건물 문화관은 늘 새로운 생각으로 책방골목을 날렵하게 하고

 젊게 한다. 전시실과 이벤트 홀, 북 카페, 어린이 책 사랑방, 하늘정원을 갖췄다.

 어린이와 젊은 엄마가 들락거리면서 보수동책방골목까지 덩달아 생동감이 난다.

 

 몇 십 년은 젊어진 것 같다. 문화관은 보수동책방골목을 어떻게 소개할까? 홈페이지에 소개하는 글이 보인다. 자화자찬 감은 들지만 한 마디도 틀린 말이 없어 그대로 옮긴다.

'보수동책방골목은 6 · 25전쟁 당시 피란민들이 가져온 책을 생활을 위해 팔거나

천막학교에서 배우던 학생들이 교과서와 맞바꾸던 지식의 창고였습니다.

 신학기가 되면 책을 교환하려는 책 보따리가 가관이었으며 때로 개인이 소장한 값진

고서도 흘러 들어와 많은 지식인 수집가들의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현재 전국 최대 규모의 유일한 헌책방골목으로 자리매김하고 있고 책을 주제로 펼쳐지는 이색 문화공연 및 볼거리로 관광객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습니다.' 매달 이색 공연과

볼거리가 다양하게 열리므로 홈페이지를 '즐겨찾기'에 두면 유익한 나들이 정보가 될 듯. 주경업 선생의 열다섯 번째 펜 드로잉전(展) '책방골목 사람들 이바구'가 10월 27일부터 열흘간 3층 전시실에서 열리기도 했다. 매주 월요일 휴관하며

 오전 10시부터 저녁 6시까지 개방한다.

책방골목이 어린이에 쏟는 정성은 각별하다. 미래의 어른이니 그럴 만도 하다. 부산시가 7억 원을 들여 지난여름, 그러니까 8월 23일 개관한 책방골목어린이도서관은 전적으로

어린이와 젊은 엄마를 배려한 도서관이다. 책방골목 한쪽에서 어린이들 책 놀이터와

 현대식 도서관이 융합하면서 낡고 고루한 헌책방 이미지를 일시에 허물었다.

헌책과 새 책을 두루 갖춰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도록 했다. 4층 건물이며

북 카페와 열람실, 영 · 유아자료실, 어린이자료실 등을 갖췄다.

 

① 보수동책방골목 문화행사에서 어린이들이 옛날 방식으로 책을 만드는 체험을 하고 있다.

② 지난 8월 개관한 책방골목어린이도서관은 4층 건물로 북 카페와 열람실, 영 · 유아자료실, 어린이자료실 등을 갖췄다.

 

어린이도서관 개관 · 책방골목 문화행사 … 문화거리 변신

"단체 백 명까지 받아 봤습니다." 어린이도서관 김보라(31) 사서는 눈매가 해맑다.

책을 매일매일 접하고 동심을 매일매일 접하는 사람은 원래 그렇다. 도서관 방문객은

하루 평균 사오십 명. 그 갑절이나 되는 어린이를 한꺼번에 맞은 적도 있단다.

장서는 3천2백 권 정도. 중구청에서 기증한 도서들로 80%는 어린이 책이고 나머지는

 어른을 위한 도서다. 어린이 독서모임, 성인 독서모임을 주선한다. 대출은 1인당 5권,

 2주간. 책만 보는 도서관을 뛰어넘어 그림책 스토리텔링, 수요일 가족영화,

 테마전시회, '꽃 할머니' 원화전시 등 다채롭다. 책방골목이

 시민의 문화 휴식처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신천지서점 샛길로 들어가면 보인다.

월요일 휴관, 오전 10시부터 저녁 8시까지 개방.

문의 051-255-9141. 네이버 블로그blog.naver.com/okelib.

특화거리도 책방골목에 들어섰다. 어린이도서관이 개관하는 날 준공식을 가진 특화거리는 보수동책방골목 전성기를 되살리자는 시민의 바람이 일군 거리다. 그럴 만도 한 게 문화관 입구 안내판에서 보듯 70년대 70군데가 넘던 책방이 지금은 절반 조금 넘는 42군데만 남을 정도로 보수동책방골목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 왔다. 문화 명소로 나아가려면

 상황 반전이 필요했고 특화거리는 그것을 도모하려는 자구책이었다. 시비를 들여

차양막을 설치하고 알림판을 단장하고 골목 거리를 말끔히 한 보수동책방골목은 나날이 반짝이고 나날이 젊어지고 있다. 부산시 관계자는 여기가 "추억과 역사가 있는

 시민 휴식처이자 부산의 문화적 명소로 재탄생해

전국적 독서문화의 모범이 될 것"으로 소망한다.

그러한 소망은 시 관계자만의 것은 아닐 터. 보수동 책방 주인은 물론이고 보수동 단골은 물론이고 문화를 아끼고 보듬는 부산시민 대다수의 소망일 것이다. 지난 10월 중순

보수동책방골목을 책의 향기, 책의 온기로 가득 채운 문화축제는 그러한 소망이 수정처럼 단단해져서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리라. 첫째는 걸리고 둘째는 유모차 태워 축제장을

기웃거리던 젊은 엄마, 갑장친구인 듯 학교동기인 듯 삼삼오오 중장년과 노년들,

 행사장 곳곳에서 호응하고 환호하던 파릇한 청춘과 더 파릇한 학생들. 그들 모두

부산을 이끌어 왔고 이끌어 갈 주역이다. 부산 문화의 자랑스러운 한 단면이다. 축제는 '책마을로 가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10월 17일부터 사흘 동안 열렸다. 올해 11회째.

 1책방 1이벤트가 열렸고 사생대회, 영작문대회, 음악회, 공연과 마술쇼,

심포지엄, 체험, 영화상영, 저자와의 대화 등으로 속을 꽉꽉 채웠다.

지금은 가을. 단풍들고 낙엽 지는 계절. 책에 빠져 들기 딱 좋은 때이다. 책에 빠져 들어 단풍든 사람은 얼마나 보석 같은가. 낙엽 한 잎 주워 책갈피 끼우는 그 마음은

또 얼마나 보석 같은가. 책을 사든 안 사든 나들이 삼아 책방골목을 걸어 보자.

 골목을 어슬렁어슬렁 걷는 것만으로도 속이 꽉 차는 충만감을 느끼리니.

 속이 텅 비는 허전함을 느끼리니. 가는 길. 부산역 맞은편에서

시내버스 40번이나 81번을 타고 보수동책방골목 정류소 하차!

 택시를 타면 기본요금에서 약간 더 나올 듯.

 

글 동길산 시인